편지( 어머니에게 )
/ 이해인 수녀님
어제를 보내고 돌아와 닫혀진 창을 열면
순백의 옷을 입고 오는 정결한 아침
어머니
때로는 슬픔이 기다리는
좁은 돌층계를 기쁘게 오르다가
갑갑하게 돌아와 부른 나의 노래가 한숨일지라도
진정 오랜 날 하늘을 안고 깊은 마음밭에 물을 뿌리게 한
신앙은 또 하나의 목숨이었읍니다
한번 밖엔 주어지지 않은 짧은 旅程(여정) 을 위해
얼마나 성스럽게 짐을 꾸려야 할지
그 한 분의 큰 손이 나의 어깨를 치셨읍니다
부르시는 소리에 옷깃을 여미며
처음인 듯 새롭게 가득히 안아 보는 은혜로운 햇살
어머니
일출의 바다는 또한
일몰의 바다임을 기억하고 싶습니다
님이 오실 그 바다에서 당신을 만나겠지요
짙푸른 파도같은 노래를 태우며
가야 할 아침들이 기도에 젖어
늘 깨어있었으면 합니다
어머니
당신을 위해 내가
- 이해인수녀님
캄캄한 밤 등불도 없이 창가에 앉았으면
시리도록 스며드는 여울물 소리
먼 산 안개 어린 별빛에 소롯이 꿈이 이울어
깊이 눈감고 合掌하면
이밤사 더 밝게 타오르는 마음길
忍苦의 깊은 땅에 나를 묻어
당신을 위해 꽃피는 기쁨
어느 하늘 밑
지금쯤 누가 또 촛불 켜 노래 날릴까
차운 밤 밀물소리
살포시 안개 속을 오시는 당신 위해
남은 목숨
고이 빛이 되는 사랑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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