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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3-02-03 00:00
 조회 : 6,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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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4주간 월요일>>
오늘 복음에서 보면 마귀에게 사로잡혀 집에서 살지 못하고 무덤에서 살고 있는 사람을 예수님께서 만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를 잡고 괴롭히는 마귀에게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으신 뒤에 “더러운 악령아 그 사람에게서 나오너라”하고 명령하시자 마귀떼들은 그에게서 나와 돼지떼들에게 돌아갔습니다.
돼지떼들은 물에 빠져 몰사하게 되었으며 그로 인해서 마귀에게 사로잡혔던 사람은 성한 몸으로 예수님을 따르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에게 당신을 따르는 것보다 하느님께서 자기에게 어떠한 은혜를 베푸셨는가를 사람들에게 보여 증거하라고 하십니다.
이러한 광경을 목도한 이웃 주민들은 그리스도를 받아들임으로써 돼지떼가 몰사하는 사고가 두려워 예수님을 받아들이기를 꺼려하고 자가 동네에서 떠나 주시기를 청합니다.
게라사 지방은 해안가로써 석회암 동굴이 많이 있었고, 그곳은 많은 시체를 넣어 두는 묘지로써 사용되었던 곳이므로 여기서 말하는 ‘무덤’이란 마귀들린 악령에 사로잡힌 자가 거처하기에는 알맞은 장소였습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할 때, “레기온”이라고 했는데, 이 말은 로마 군대에서 6천 명에 해당하는 연대 병력을 말하는 것으로, 그만큼 큰 악령의 세력이 사로잡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무덤에 거처하는, 그 악령에 사로잡힌 사람을 낫게 하시는데 돼지떼의 죽음을 당하게 했다는 것을 사람들이 비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생각하기 나름이라고 하겠지요.
예수님은 한 사람의 영혼을 구하기 위하여, 또한 당신이 만나시는 한 사람이라도 악령의 세력에서, 병고의 어려움에서 해방시켜 이 세상에서 보다 인간답게 살게 하시는 데는 전통적인 율법도, 돼지때도 희생시키시고 계십니다.
이유는, 이 세상에 그 어떠한 것도 사람의 영혼 구원보다 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러한 사정을 이해할 수 없었던 이웃 주민들은 악령에 사로잡혔던 자의 해방보다는 당장 자기들의 이해관계가 달려 있는 돼지떼의 죽음이 더 아까웠던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점은 하느님의 나라를 진실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지금까지의 생활의 희생과 재난의 변화를 가져오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못 알아들을 때, 그 주민들처럼 예수님에게 떠나가 달라는 말밖에는 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다른 이의 구원을 위해서 내 재산의 희생이 따를 때 희생을 꺼려하고 예수님께 “나에게서 떠나주십시오!”하는 마음 자세는 아닌지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 대화후광 신부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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