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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3-02-07 00:00
오늘의 복음- 세례자 요한의 죽음
 글쓴이 : 가로등
조회 : 5,941  
<<연중 제4주간 금요일>>

예수님께서 복음 선포를 갈릴래아에서부터 시작하신 뒤로 예수님의 명성과 그분의 행적이 사람들 사이에 널리 퍼지자 그 소문은 헤로데왕의 귀에까지 들어갔습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에 대한 소문을 헤로데왕이 듣자, 그는 당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유는 자신이 부정한 죄를 지었고, 그 사실을 지적한 세례자 요한을 죽인 죄까지 그를 괴롭히고 있었던 차에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예수님의 출현으로 더욱 당황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복음에서 헤로데는 예수님의 명성을 듣고, “내가 목을 벤 요한이 다시 살아난 것이다”하였는데 어떤 배경에서 헤로데는 그런 말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헤로데는 세례자 요한을 죽인 것에 대한 죄책감을 갖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누구든지 악한 일을 행한다면 온 세계가 그의 적이 되는 마음이 들 것입니다.
마음속의 그 악행을 지워버릴 수 없기 때문에, 그 생각에 잠기면 자신이 저지른 악한 일에 생각이 미치게 마련인 것입니다.
그리고 비난받는 것이 자기 자신임을 자기 자신 안에서 발견하기 때문에 그 사람은 견딜 수가 없게 되고 악행의 결과가 자신에게 달라붙어 공포로 몰아넣는 불안 속에 헤매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헤로데도 예수님의 소문을 들었을 때 자기가 죽인 세례자 요한이 자기에게 복수하기 위하여 다시 살아났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다음으로, 어떤 이들은 예수님을 엘리야라고 했는데, 여기에는 무슨 뜻이 있었을까 하는 문제입니다.
그것은 유다 사상 속에 전해지는 민족주의자의 판단이 들어 있다고 하겠습니다.
유다인들은 당시에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 메시아는 로마의 억압 중에 있는 자기 나라, 자기 민족을 해방시켜 주고 자유를 주어 세계를 지배하는 승리를 가져다 줄 정복자로 알고 있었기에, 기적을 베풀고 사람들을 따르게 하는 예수님 안에서 그러한 능력을 기대했었고, 이에 따라 어떤 이는 예수님을 엘리야라고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또한 어떤 이는 예수님을 선지자나 예언자 중의 하나라고 했습니다.
여기에는 하느님의 음성을 기다리던 사람들의 판단이 들어 있다고 하겠습니다.
즉,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을 듣고 보면서 예수님 안에서 하느님의 능력과 말씀을 전하던 예언자의 모습을 보았던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은 그들의 조상이 이미 기대하였던 예언자들 중의 예언자시었고 하느님의 존재를 사람들에게 보여주셨고 전하신 것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예수님을 예언자나 예언자 중에 하나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 생활 속에서, 기도와 믿음의 생활 속에서 예수님을 누구라고 여기며 어떤 분이시라고 다른 이에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각자 마음속 깊이 생각해 봅시다.
죄를 짓고 쫓기는 마음으로 헤로데처럼 말할 것인가?
아니면 유다인들처럼 현세 생활을 윤택하게 해줄 해방자를 찾고 있는가?
아니면 진실한 믿음 안에 생명의 주님으로 대하고 모실 것인가?
-대화후광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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