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눔터 > 나눔방
|
 |
 |
|
작성일 : 05-09-20 00:00
|
성 안드레아 김대건과 성 바울로 정하상과 동료 순교자 대축일
|
|
 조회 : 7,323
|
<html>
<head>
<style type='text/css'>
body, tr, th, td { font-size:9pt; font-family:Tahoma,굴림; }
p { margin-top: 0px; margin-bottom: 0px; font-size:9pt; }
</style>
</head>
<body leftmargin='8' topmargin='4'>
<div><IMG
src="http://home.catholic.or.kr/attbox/bbs/include/readImg.asp?gubun=300&maingroup=1&filenm=0920Martiri+coreani%2Ejpg"
width=600> <BR>한국 순교자 103위 성인(Sts. 103 Martyres Coreae) - 문학진토마 <BR><BR>
<UL><BR>축일: 9월20일<BR>성 안드레아 김대건과 성 바울로 정하상과 동료 순교자 대축일<BR>Santi Andrea Kim
Taegon, Paolo Chong Hasang e compagni Martiri coreani <BR><BR>한국에는 18세기 말경에
처음으로 몇몇 평신도들의 노력으로 그리스도 신앙이 들어왔다.<BR>1784년 북경에서 영세한 첫 한국인 이 귀국하기 전에 이미 공동체를
형성하고 신앙을 <BR>실천하였으니 이는 교회사에 전무 후무한 일이다.<BR><BR>초기부터 신자들은 모진 박해를 겪어야 했고 박해는
100년 이상 계속되어 만 명 이상의<BR>순교자를 냈다. <BR>초기 50년간에는 중국인 사제 두 분의 짧은 사목 활동이 있었을 뿐
1836년에 프랑스에서 <BR>선교사들이 몰래 입국할 때까지는 사목자 없이 평신도들만이 용감하고 열심한 신자 <BR>공동체를 지도하고 길러
냈었다.<BR>이 공동체 속에서 1839년,1846년,1866년 박해 때 순교한 103명이 성인 반열에 들게 되었다.<BR>그들 중 열심한
사목자였던 최초의 사제 안드레아 김대건과 훌륭한 평신도 바울로 정하상이<BR>대표적 인물이다.<BR></UL>
<CENTER><BR><BR><IMG
src="http://home.catholic.or.kr/attbox/bbs/include/readImg.asp?gubun=300&maingroup=1&filenm=0920Martiri+coreani+4%2Ejpg"><BR></CENTER>
<UL><BR><BR>세계 어느 나라에서든지 가톨릭 신앙이 전파된 것을 보면 대개 선교사에 의해 이루어졌다.<BR>그러나 하느님의 놀라운
섭리와 성령의 힘은 성실한 사람들이 진리를 찾아 생활하고자 <BR>그리스도를 발견하게 한다.<BR>극동 아시아의 조그마한 반도인 조선에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해진 것은<BR>성실한 유학자들이 서적을 통해 학문을 연구한 끝에 스스로 입교함으로써 이루어졌다.<BR><BR>이것 역시
궁극적으로는 온 세상에 당신 성령의 힘을 불어넣으시는 하느님의 섭리일 것이다.<BR>중국에서 활동하던 선교사들이 중국의 복음화를 위해
한문으로 쓴 성서와 교리서<BR>또는 윤리와 신학 서적들이 그 당시의 외교 관계를 통해 자연스럽게 조선에 들어오게 되었고,<BR>다른 많은
종교 서적들과 함께 읽히던 천주 교회 서적들은 진리를 찾던 조선의 선량한 <BR>사람들에게 구원의 빛이 되었던 것이다.<BR><BR>처음에는
권철신과 이벽을 중심으로 한 젊은 양반 학자들의 학문적인 모임이었던<BR>천진암 주어사 강학회가 1779년경에는 천주교 신앙을 알고
실천하려는 모임이 되었다.<BR><BR>1783년,<BR>이승훈을 북경으로 파견하여 북경 선교사에게서 교리를 배우고 영세를 받게
하였으며,<BR>그 이듬해 이승훈이 귀국하여 이벽, 권일신, 정약용, 약종 형제들과 함께 첫 신앙 <BR>공동체를 형성했다.<BR>성직자나
선교사가 없이 스스로 복음을 받아들인 조선의 신앙 공동체는 급속도로 <BR>성장하였으나 정치적 불안과 당파 싸움 및 교리와 마찰을 일으킨
조선의 풍속 때문에 <BR>심한 박해를 받았다.<BR>1785년, <BR>형조의 우연한 검거에 의해 야기된 최초의 박해에 이어 크고 작은
박해들이 끊임없이 <BR>이어졌고 수천 수만 명이 신앙을 위하여 목숨을 바쳤다.<BR><BR>신자들의 간절한 요청으로 1793년에 조선에
들어온 중국인 주문모 신부는 1801년에 <BR>대부분의 교회 창설자들과 함께 순교했다.<BR>목자 없는 조선의 신앙 공동체는 1825년,
로마 교황청에까지 그 어려움을 호소하여<BR>1831년에는 조선 교구가 설정되고 파리 외방 선교회가 이 지방의 선교를 담당하게
되어<BR>1835년부터 몇 명의 프랑스 선교사가 들어와서 활동했으나 1839년에는 주교 한 사람과 <BR>사제 두 사람이 모두
순교했다.<BR><BR>1845년에는 <BR>이 땅에 최초의 한국인 사제인 김대건 신부가 잠깐 활동했으나 그 다음해에 순교했다.<BR>서구
열강들이 극동 지방에서 세력 다툼을 벌이던 19세기 말에는 국내외의 불안이 <BR>고조되고 쇄국 정책으로 1866년,외국 성직자들이 선교
활동을 하던 천주 교회에 다시 <BR>끔찍한 박해가 일어나 1만여 명의 신자들이 학살되고 십여 명의 성직자들이 모두 <BR>살해되거나
추방되었다.<BR>이렇게 100여 년에 걸친 박해로 적지 않은 신자들이 배교하기도 했으나 학자와 남자들 뿐 <BR>아니라 부녀자와 아이들 및
평민과 상인들까지도 신앙을 위하여 용감하게 목숨을 바쳤다.<BR><BR>이 중에서 초기의 순교자들은 자료의 미비로 누락되고 1839년부터
1849년까지의 순교자들 <BR>중에서 79명이 선택되어 1925년 7월 5일 복자품에 오르게 되었고, <BR>다시 1866년의 박해를
중심으로 순교한 24명이 1968년 10월 6일에 시복되어 모두 103명의 <BR>순교자가 시복되기에 이르렀다. <BR><BR>이 103명의
순교 복자들은 한국 선교 200주년이 되는 1984년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BR>의해 서울에서 시성되어 성인품에 올랐다.
<BR><BR></UL>
<CENTER><BR><IMG
src="http://home.catholic.or.kr/attbox/bbs/include/readImg.asp?gubun=300&maingroup=1&filenm=0919%2D1%282%29%2Ejpg"
width=590><BR><BR></CENTER>
<UL><BR>성모자와 한국 성인들 - 월전 장우성(月田 張遇聖,요셉,1912- ) <BR>1949년, 각 185x108cm. 종이에 채색,
바티칸 인류복음화성 고문서고<BR><BR>이 작품은 1950년 바티칸에서 열린 성모성년을 <BR>기념하여 세 폭의 연작으로 제작된 것이다.
<BR>가운데는 성모자와 세례자 요한이 있고 좌측에는 순교자 강완숙과 성 김효주, <BR>성 김효임이 있다. <BR>우측에는 성 김대건
신부와 성 남종삼, 성 류대철이 서 있다. <BR><BR>하느님께 대한 신앙을 증거하기 위해 순교한 <BR>우리나라 성인의 모습이
단아하면서도 거룩한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다.<BR><BR>신자들이 강요받은 것은 주로 세 가지였다.<BR>첫째는 배교할 것, <BR>둘째는
신자들의 성명과 주소를 댈 것, <BR>그리고 마지막으로 교회 서적과 성물을 내놓으라는 것이다. <BR><BR>이에 불복하면 참혹한 형벌을
가했는데 손과 발, 다리에 주리를 틀며 <BR>끈으로 살을 톱질하여 베어 내고 치도곤이나 곤장으로 때리는 것이다.<BR>대부분의 신자들은
남녀를 불문하고 몇 차례의 매를 맞으면 살이 터지고 <BR>뼈가 부러지며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었다.<BR>그러다가 기절하면 감옥에 처넣어
두는데 그 감옥이란 통나무로 된 움집 <BR>같은 것이라서 빛이 들어오지 않아 어둡고 음산하며 바닥은 습기로 가득 차<BR>신자들의 매맞는
상처는 곪고 썩어 구더기가 생길 지경이었고, 먹을 것도 제대로 <BR>주지 않아 굶주림에 지쳐 어떤 사람들은 거적때기를 뜯어서 씹고 있을
정도였다.<BR>많은 신자가 이렇게 비참하게 옥사했는데, 차라리 교수형이나 참수형을 받는 것이 <BR>오히려 고통을 덜 받는
편이었다.<BR>많은 신자들은 이 같은 혹독한 심문과 매질 그리고 감옥 생활에도 굳건하게 신앙을<BR>지키며 때로는 심문 중에 창조주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유교의 부모 공경과 <BR>임금에 대한 충성심에 비교하여 교회의 가르침을 설파하다가 용감하게 죽음을
맞이했다.<BR></UL>
<CENTER><BR><BR><IMG
src="http://home.catholic.or.kr/attbox/bbs/include/readImg.asp?gubun=300&maingroup=1&filenm=0920Martiri+coreani+1%2Ejpg">
<BR><BR></CENTER>
<UL><BR>우리는 신앙 생활에서 하느님의 은총과 축복만을 빌며 무사안일한 생활을 꿈꾸기 쉽다. <BR>그러나 이 세상에서 악의 세력과
투쟁하며 복음의 메시지에 따라 살아가려면 비록 박해 <BR>시대가 아니더라도 갖가지 어려움에 부딪히고 유혹에 빠질 수 있다. <BR>그때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고통과 수난을 생각하며 구원의 길을 용감하게 걸어간 순교자들을 <BR>생각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신앙 생활이 무사 안일하기만을
바랄 수는 없을 것이다. <BR>그리스도를 따르는 신앙은 우리를 이 세상의 모든 악과 불행에서 면제해 주는 것이 <BR>아니라 고통과
어려움을 당함으로써 이 세상의 죄악과 불행을 극복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BR><BR>이러한 의미에서 한국 순교성인들의 진리에 대한
갈망과 순교 정신은 현대 사회의 부조리와 <BR>무사 안일주의에 좋은 귀감이 될 것이다. <BR></UL>
<CENTER><BR><BR><IMG
src="http://home.catholic.or.kr/gnbbs/ncbbs.dll/chinchang/-/b/1373/0920Santi%20Andrea%20Kim%20Taegon,%20Paolo%20Chong%20Hasang%20e%20compagni%20Martiri%20coreani.jpg"
align=bottom border=0><BR></CENTER>
<UL><BR><BR>1877년에 <BR>서울의 감옥에 갇혔던 리델 주교는 옥중 생활의 비참한 모습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BR><BR>나는 기아로 희생이 된 그들을 보고 너무나 놀라 뒷걸음질을 쳤다. <BR>그들은 사람이라기보다는 해골이 걸어다니고 있는
것이라고 밖에 여겨지지 않았다. <BR>괴로움과 굶주림과 가려움과 곪아 썩어 가는 상처는 그들을 볼 수 없을 만큼 흉악한 <BR>모습으로
바꿔 놓았다."<BR>1845년에 입국한 다블뤼(Daveluy)신부는 기해년의 옥중 생활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BR>교우들은
이러한 감옥 속에 빽빽이 처넣어져 있었으므로 발을 뻗고 누울 수도 없을 정도이다. <BR>그들이 소리를 같이하여 말하는 바에 의하면, 이
지굿지굿한 옥중의 괴로움에 비하면 고문은 <BR>문제도 안된다. <BR>상처에서 흐르는 피와 고름 때문에 멍석은 푹푹 썩어 가고 고약한
냄새를 풍기게 되니, <BR>이로 말미암아 고약한 병이 돌기 시작하여 2,3일내에 죽은 교우도 몇이나 있었다. <BR>그러나 가장 무서운
형벌은 굶주림과 목마름이었다. 고문하는 곳 에서는 용감히 그 신앙을 <BR>공표하면서도 이 기갈을 참지 못하여 굴복한 이도 적지 않았다."
<BR>류홍렬, ’한국 천주 교회사’ 상권 p.318-319)<BR><BR><BR>성 안드레아 김대건 사제 순교자의 편지에서
<BR>(제25신의 발췌, 김대건의 서한, 이원순, 허인 편저, 1975년, 정음사)<BR><BR>이런 군난 때에는 주의 시험을 받아 세속과
마귀를 쳐 덕공을 크게 세울 때다. <BR><BR>교우들 보아라. 우리 벗아, 생각하고 생각할지어다.<BR>천주무시지시로부터 천지 만물을
배설 하시고, 그 중에 우리 사람을 당신 모상과 같이 <BR>내어 세상에 두신 위자와 그 뜻을 생각할지어다.<BR>온갖 세상 일을 가만히
생각하면 가련하고 슬픈 일이 많다.<BR>이 같은 험하고 가련한 세상에 한번 나서 우리를 내신 임자를 알지 못하면 난 보람이
없고,<BR>있어 쓸데없고, 비록 주은으로 세상에 나고 주은으로 영세 입교하여 주의 제자 되니,<BR>이름이 또한 귀하거니와 실이 없으면
이름이 무엇에 쓰며,<BR>세상에 나 입교한 효험이 없을 뿐아니라, 도리어 배주 배은하니, 주의 은혜만 입고 주께 <BR>득죄하면 아니 남만
어찌 같으리요.<BR><BR>씨를 심는 농부를 보건대, 때를 맞추어 밭을 갈고 거름을 넣고 더위에 신고를 돌아보지 <BR>아니 하고 아름다운
씨를 가꾸어,밭 거둘 때에 이르러 곡식이 잘되고 염글면, 마음에 <BR>땀낸 수고를 잊고 오히려 즐기며 춤추며 흠복할 것이요,<BR>곡식이
염글지 아니하고 밭 거둘 때에 빈 대와 껍질 만 있으면, 주인이 땀낸 수고를 <BR>생각하고 오히려 그 밭에 거름 내고 들인 공부로써 그
밭을 박 대하나니, 이같이 주 <BR>땅을 밭을 삼으시고 우리 사람으로 벼를 삼아, 은총으로 거름을 삼으시고 강생 구속하여 <BR>피로
우리를 물 주사,자라고 염글도록 하여 계시니, 심판 날 거두기에 이르러 은혜를 <BR>받아 염근자 되었으면 주의 의지로 천국을 누릴
것이오.<BR>만일 염글지 못하였으면 주의 의지로서 원수가 되어 영원히 마땅한 벌을 받으리라.<BR><BR>우리 사랑하온 형제들아,
알지어다. 우리 주 예수 세상에 내려, 친히 무수한 고난을 <BR>받으시고 괴로운 데로조차 성교회를 세우시고 고난 중에 자라게 하신지라.
그러나 <BR>세상 풍속이 아무리 치고 싸우나 능히 이기지 못할지니,예수 승천 후 종도 때부터 <BR>지금까지 이르러 성교 두루 무수
간난중에 자라니. 이제 우리 조선에 성교 들어온 지<BR>5,60년에 여러 번 군난으로 교우들이 이제까지 이르고 또 오늘날 군난이 치성하여
<BR>여러 교우와 나까지 잡히고 아울러 너희들까지 환난중을 당하니,<BR>우리 한 몸이 되어 애통지심이 없으며, 육정에 차마 이별하기
어려움이 없으랴.<BR>그러나 성경에 말씀하시되, 작은 털끝이라도 주 돌아보신다 하고 모르심이 없어 <BR>돌보신다 하셨으니,어 찌 이렇다
할 군난이 주명 아니면 주상 주벌 아니랴.<BR><BR>주의 성의를 따라오며, <BR>온갖 마음으로 천주 예수의 대장의 편을 들어, 이미
항복받은 세속 마귀를 칠지어다.<BR>이런 황황한 시적을 당하여, 마음을 늦추지 말고 도리어 힘을 다하고 역량을 다하여,<BR>마치 용맹한
군사가 병기를 갖추고 전장에 있음같이 하여 싸워 이길지어다.<BR>부디 서로 우애를 잊지 말고 돕고 아울러 주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환난을
걷기까지 기다리라.<BR>또 무슨 일이 있을 지라도, 부디 삼가고 극진히 조심하여 위주 광영하고 조심을 배로 더하고
<BR>더하여라.<BR><BR>여기 있은 자 20인은 아직 주은으로 잘 지내니 설혹 죽은 후라도 너희가 그 사람들의 <BR>가족들을 부디
잊지를 말라.<BR>할 말이 무궁한들 어찌 지필로 다하리, 그친다.<BR>우리는 미구에 전장에 나아갈 터이니 부디 착실히 닦아, 천국에 가
만나자. 마음으로 <BR>사랑하여 잊지 못하는 신자들에게,<BR>너희 이런 난시를 당하여 부디 마음을 허실히 먹지 말고 주야로 주은을
빌어,<BR>삼구를 대적하고 군난을 참아 받아, 위주 관영하고 여등의 영혼 대사를 경영하라.<BR>이런 군난 때는 주의 시험을 받아, 세속과
마귀를 쳐 덕공을 크게 세울 때니,<BR>부디 환난에 눌려 항복하는 마음으로 사주 구령사에 물러나지 말고 오히려 지나간 <BR>성인 성녀의
자취를 만만 수치하여,<BR>성교회 영광을 더으고 천주의 착실한 군사와 의자됨을 증거하고 비록 너희 몸은 여럿이나,<BR>마음으로는 한
사람이 되어, 사랑을 잊지 말고 서로 참아 돌보고 불쌍히 여기며, <BR>주의 긍련하실 때를 기다리라.<BR><BR>할 말이
무수하되,<BR>거처가 타당치 못한다. 모든 신자들은 천국에 만나 영원히 누리기를 간절히 바란다.<BR>내 입으로 너희 입에 대어 사랑을
친구하노라.<BR></UL>
<CENTER><BR><BR><IMG
src="http://home.catholic.or.kr/gnbbs/ncbbs.dll/chinchang/-/b/1373/0920PAUL%20CHONG%20HASANG.jpg"
align=bottom border=0><BR></CENTER>
<UL><BR><BR>성 바울로 정하상의 「상재상서」에서 <BR>정하상의 상재상서에서, 김남수 주교 편역) <BR><BR>종교도 어디서
왔거나 진정 거룩한 종교라면 어찌 이 나라 저 나라의 경계가 <BR>있겠습니까 <BR>천주께서 천지 만물을 만드신 목적은 우리에게 당신의
복을 내려 주시고, <BR>당신의 착하심을 드러내시기 위해서입니다. <BR>하늘을 만드시어 우리를 덮어 주시고 땅을 만드시어 그 위에 우리를
살게 하시고, <BR>해와 달과 별들을 만드시어 우리를 비추시고 초목과 금수와 금은동철을 우리가 <BR>향유하고 사용하게 하셨습니다.
<BR>모태에서 태어나 장성할 때까지 가지가지 은혜가 이와 같이 한이 없으니. <BR>인간의 마땅한 본분은 과연 어떠해야 하겠습니까?
<BR>만일 하늘을 머리에 이고 땅을 밟고 살면서 먹고 입기만 한다면 인류를 내신 분의 <BR>은덕을저버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BR>예를
들어, 아버지가 집을 짓고 살림을 차려 아들에게 주어 쓰게 하였는데도 아들이 <BR>그 집에 살며 그 살림을 사용하면서도 제가 잘난 체하고,
<BR>부모를 섬기며 그 은덕에 보답할 도리와 근본을 모른다면 어찌 효도라 할 수 <BR>있겠습니까? <BR>그것이 바로 불효가
아니겠습니까? <BR>사람이 이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은 티끌에 이르기까지 모두 천주의 능력에서 비롯된 <BR>것입니다. <BR>우리를 내시고
기르시고 돌보시며 인도하십니다. <BR>굳이 죽은 후에 받을 상을 말하지 않더라도 당장 지금 받고 있는 은혜가 극진하여 <BR>그분을 받들어
섬긴들 어찌 만 분의 일이나 보답한다 하겠습니까? <BR>천주를 섬기는 일이 <BR>어려운 것도 아니려니와 은밀한 말을 들추어내거나 괴상한
일을 하는 것도 아니라, <BR>오직 스스로의 잘못을 고치고 새로운 사람이 되어 천주의 계명을 지키려는 것뿐입니다. <BR><BR>사람의
목숨이 길다 해도 백 년을 넘기지 못하는데 자기 이익만을 탐하여 얻지 <BR>못할 것을 얻으려 애쓰고 이미 얻은 것을 잃지 않으려 걱정하는
사이에 어느덧 <BR>늙고 만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BR>이 몸이 한 번 죽으면 부귀 공명도 반드시 허무로 돌아가고 맙미다.
<BR>부귀공명마저 일평생 애써도 얻지 못하는 것인데 이 헛된 꿈을 깨기가 그다지 어렵단 <BR>말입니까? <BR>세상에 있을 때에 정신이
흐려져 깨닫지 못하다가 육신이 죽은 뒤에 뉘우친다 해도 때는 <BR>이미 늦었습니다. <BR>그러기에 목을 벨 도끼가 눈앞에 있고 몸을 삶을
가마솥이 제 뒤에 있어도 꿋꿋이 굽히지 <BR>않은 사람이 대대에 적지 않습니다. <BR>이것도 참된 종교의 증거입니다.
<BR><BR>교리의 참되고 거짓됨이나 사리의 바르고 그름을 가리지 않고, 얼토당토 아니한 말로써 <BR>공격하고 배척하고 있으니, 그저
외국의 종교라 해서 그러는 것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BR>금은 산지를 가리지 않고 순금이면 보배가 아니겠습니까? <BR>종교도 어디서
왔거나 진정 거룩한 종교라면 어찌 이 나라 저 나라의 경계가 있겠습니까? <BR>수명을 감하고 바쳐서 천주교의 참됨을 증거하고 천주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 우리의 <BR>사명입니다. <BR>이 몸도 장차는 죽을 목숨이오니, 감히 말해야 할 이 시각을 만나 한 번 머리를 들고
<BR>길게 외치지 못하고 슬프게도 입을 다물고 죽어 버린다면 <BR>산같이 쌓인 회한을 장차 백 대 후세에 이르기까지 폭로할 길 없기에,
엎드려 청하오니, <BR>지금 한 번 밝은 빛으로 굽어보시고, 도리가 참된지 거짓인지, 올바른지 그 릇된지 자세히<BR>판단한 다음, 위로는
정부로부터 아래로는 백성에 이르기까지 일변하여 바른길로 돌아와, <BR>금명을 풀고 체포하는 법을 거두며, 옥에 갇힌 사람들을 석방하고 온
백성이 모두 제 <BR>고향에 돌아가제 직업을 즐기면서 함께 평화를 누리게 해주시기를 천번 만번 바라고 <BR>또 바랍니다.
<BR><BR>(정하상의 상재상서에서, 김남수 주교 편역)<BR><BR><EMBED
src=[안내]태그제한으로등록되지않습니다-http://www.andong-ch.org/media/mp3/AD049/bwv560.m3u
width=1 height=1 type=audio/x-mpegurl volume="0" autostart="true">
<BR></UL></div>
</body>
</html>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