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맞이 시 모음> 노천명의 '봄의 서곡' 외
+ 봄의 서곡
누가 오는데 이처럼들 부산스러운가요
목수는 널판지를 재며 콧노래를 부르고
하나같이 가로수들은 초록빛
새 옷들을 받아들었습니다
선량한 친구들이 거리로 거리로 쏟아집니다
여자들은 왜 이렇게 더 야단입니까
나는 鋪道에서 현기증이 납니다
삼월의 햇볕 아래 모든 이지러졌던 것들이
솟아오릅니다
보리는 그 윤나는 머리를 풀어 헤쳤습니다
바람이 마음대로 붙잡고 속삭입니다
어디서 종다리 한 놈 포루루 떠오르지 않나요
꺼어먼 살구남기에 곧
올연한 분홍 베일이 씌워질까 봅니다
(노천명·시인, 1912-1957)
+ 봄
봄이 혈관 속에 시내처럼 흘러
돌, 돌, 시내 가차운 언덕에
개나리, 진달래, 노오란 배추꽃,
삼동(三冬)을 참아 온 나는
풀포기처럼 피어난다.
즐거운 종달새야
어느 이랑에서나 즐거웁게 솟쳐라.
푸르른 하늘은
아른아른 높기도 한데……
(윤동주·시인, 1917-1945)
+ 봄을 위하여
겨울만 되면
나는 언제나
봄을 기다리며 산다.
입춘도 지났으니
이젠 봄기운이 화사하다.
영국의 시인 바이런도
'겨울이 오면
봄이 멀지 않다'고 했는데
내가 어찌 이 말을 잊으랴?
봄이 오면
생기가 돋아나고
기운이 찬다.
봄이여 빨리 오라.
(천상병·시인, 1930-1993)
+ 無言으로 오는 봄
뭐라고 말을 한다는 것은
천지신명天地神明께 쑥스럽지 않느냐
참된 것은 그저 묵묵히 있을 뿐
호들갑이라고는 전연 없네
말을 잘함으로써 우선은 그럴싸해 보이지만
그 무지무지한
추위를 넘기고
사방에 봄빛이 깔리고 있는데
할 말이 가장 많은 듯한
그것을 그냥
눈부시게 아름답게만 치르는
이 엄청난 비밀을
곰곰이 느껴보게나
(박재삼·시인, 1933-1997)
+ 봄
불타버린 낙산사에서 나도 모르게 미소 지으며
기념사진을 찍다가
이렇게 웃어도 되는가?
날이 저물어서야 그 이유를 알았다
연둣빛 촉을 틔운 봄이
낙산사를 품고 있었던 것이다
바늘구멍을 통과한 낙타가 쉬는 것처럼
편안한 얼굴
나는 그 모습이 좋아
폐허의 낙산사에서 미소 지으며 기념사진을 찍었던 것이다.
(맹문재·시인, 1963-)
+ 봄 일기
봄이 일어서니
내 마음도
기쁘게 일어서야지
나도 어서
희망이 되어야지
누군가에게 다가가
봄이 되려면
내가 먼저
봄이 되어야지
그렇구나
그렇구나
마음이 흐르는
시냇물 소리
(이해인·수녀 시인, 1945-)
+ 봄맞이
바람이
들판으로
봄 마중 갔다.
흙 묻은
비닐 조각 병 조각
널려 있다.
새싹이랑
겨울잠 깬 친구들
터억 막고 있다.
아차,
봄맞이 들판 대청소를
깜빡했다.
(추필숙·시인)
+ 매화와 산수유 입술 터졌다
처마 밑 고드름 끝에선
송알송알 땀 영그는 소리
눈 덮인 텃밭에선
쫑긋쫑긋 마늘순 기지개 켜는 소리
깨어진 얼음 사이론
낮게 흐르는 피아노 소리
강바람에 실려오는
산까치 짝꿍 부르는 소리에
매화와 산수유 입술 터졌다.
(강대실·시인, 1950-)
+ 강철 새잎
저거 봐라 새잎 돋는다
아가 손마냥 고물고물 잼잼
봄볕에 가느란 눈 부비며
새록새록 고목에 새순 돋는다
하 연둣빛 새 이파리
네가 바로 강철이다
엄혹한 겨울도 두터운 껍질도
제 힘으로 뚫었으니 보드라움으로 이겼으니
썩어가는 것들 크게 썩은 위에서
분노처럼 불끈불끈 새싹 돋는구나
부드러운 만큼 강하고 여린 만큼 우람하게
오 눈부신 강철 새잎
(박노해·시인, 1958-)
+ 봄 풍경
싹 틀라나
몸 근질근질한 나뭇가지 위로
참새들 자르르 내려앉는다
가려운 곳을 찾지 못해
새들이 무작위로 혀로 핥거나 꾹꾹 눌러 주데
가지들 시원한지 몸 부르르 떤다
다시 한 패거리 새 떼들
소복이 앉아 엥엥거리며
남은 가려운 곳 입질 끝내고는
후드득 날아오른다
만개한 꽃 본다
(신달자·시인, 19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