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러분은 모두 그분, 사랑이신 그분께서 우리의 사랑을 구걸하고 계시다는 것을, 또한 우리는 그분께 드리지 않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있습니까? 더욱이, 변치않는 희생으로 자신을 내어놓는 그 유일한 사랑을, 사랑 중의 사랑을 만나러 가는 것을 우리는 피하고 있습니다.
주례 사제가 강복을 주시려고 할 때, 복되신 어머니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주의깊게, 조심하여라… 성호경 대신 다른 습관적인 손짓을 하는구나. 이 강복이 사제의 손으로 받을 수 있는 마지막 축복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기억하여라. 이곳을 떠나면서 언제 죽을 지 너희는 모르는 것이다. 다른 사제로부터 또 강복을 받을 수 있을지 너희는 모르는 것이다. 이 축성된 손으로 주는 강복은 거룩하신 성삼위의 이름으로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의를 기울여 경의를 표하며 성호경을 그어라. 네 삶에서 받을 수 있는 마지막 강복이라고 여겨라.”
얼마나 많은 날들을 우리는 거룩한 미사에 대해 이해하지 않고, 또 참례하지 않고 빠뜨립니까! 왜 단 반시간이라도 일찍 일어나서 미사에 달려가고, 주님께서 우리에게 퍼부어 주시려는 모든 축복을 받는 그 노력도 하지 않는 겁니까?
물론 맡은 책임이 있고 일이 있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매일 미사에 참례하지 못한다는 것은 알지만, 적어도 일주일에 두 번이나 세 번은 가능하지 않습니까?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정말 최소한의 핑계로 주일 미사도 피하고 있습니다. 애가 있어서, 애가 둘이라서, 애가 열 명이라서, 그래서 미사를 못합니다. 다른 중요한 약속이나 일이 있으면 어떻게든 해내지 않습니까? 애들을 전부 데리고 간다던가, 교대로 한다던가, 남편이 먼저 가고 아내는 다른 시간에 간다던가, 어쨌든 하느님께 대한 본분은 지키는 겁니다.
공부할 시간은 있고, 일할 시간, 놀 시간, 쉴 시간은 있으면서, 적어도 주일에 미사에 갈 시간은 우리에게 없습니다.
미사가 끝난 뒤에, 예수님께서는 몇 분이라도 머물러 달라고 내게 부탁하셨습니다.
“미사가 끝난 뒤, 너무 서둘러 떠나가지 말아라. 잠시 머물러서 나와 함께 있음을 즐기고, 나도 너와 함께 있음을 즐기게 해다오..”
나는 어린아이처럼, 영성체 후에 주님께서 5분이나 10분쯤 머물러 계시다는 얘기를 누군가에게 들어서, 주님께 여쭤보았습니다.
“주님, 영성체 후에 저희와 함께 솔직히 얼마나 머물러 계십니까?”
주님께서는 내 어리석은 질문에 웃으셨을 것이 틀림없었습니다: “내가 함께 있기를 너희가 원하는 만큼이다. 집안일을 하면서 몇마디씩 던지며, 네가 하루종일 나에게 말한다면, 나는 너에게 귀 기울이고 있을 것이다. 나는 너와 항상 함께 있다. 떠나는 것은 네 쪽이다. 미사가 끝나고 돌아가면 의무는 끝난다. 주님의 날을 지킨 것이고 네게는 이제 끝이다. 그러나 나는 적어도 그날 만큼은 너희 가족의 삶을 함께 나누고 싶어하며, 너희는 그것을 생각하지 못한다.”
“너희 가정에는 모든 것을 위한 장소가 있고, 각각의 활동을 위한 공간이 있다. 자는 곳, 요리하는 곳, 식사하는 곳, 등. 그런데 나를 위한 공간은 어디에 만들었느냐? 성상을 갖다 놓은 곳은 언제나 먼지만 쌓일 뿐이고 그런 장소는 안된다. 적어도 하루에 5분이라도 온 가족이 모여 그 날을 주신 것을, 생명이라는 선물을 주신 것을 감사할 수 있어야 하고, 그날에 필요한 것을 청하고 축복과 보호를 청하며, 건강을 청할 수 있는 그런 장소여야 된다. 너희 집에 모든 것은 자기 자리가 있지만, 내 자리는 없다.”
“사람은 매일매일의 계획을 세우고, 한 주나 몇 달, 또 휴가의 계획을 세운다. 언제 쉴지, 언제 영화를 보러 갈지, 언제 할머니를 보러 가거나, 손자를 보러 갈지, 언제 친구를 만나거나 재밌는 일을 할지 안다. 그러나 몇 가족이나, 적어도 한달에 한 번이라도 ‘이 날은 우리 모두가 감실에 계신 예수님을 만나러 갈 차례다’라고 말하며 온 가족이 내게 와서 이야기하느냐? 몇 번이나 내 앞에 앉아서 나와 이야기하고, 지난 번에 다녀간 이후로 어떻게 지냈으며, 그들이 처한 문제나, 어려움을 얘기하고, 필요한 것을 청하고… 나를 이런 일들의 일부가 되게 하느냐? 몇 번이나?”
“나는 모든 것을 안다. 나는 너희 마음과 생각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비밀까지도 읽는다. 그러나 나는 너희가 너희의 삶을 이야기해주고, 나를 가족의 하나로, 가장 친한 친구의 하나로 함께 해주는 것을 즐거워 한다. 오, 사람이 자기 삶에 내 자리를 마련해주지 않아서 잃어버리는 은총이 얼마나 많은지!”
그날, 또 다른 날들에 내가 그분과 함께 머무는 동안, 그분께서는 많은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오늘 나는 그분께서 내게 맡기신 사명을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내 피조물들을 구하기를 원했다. 천국으로의 문이 열리는 순간이 너무나 많은 고통으로 충만해 있었기 때문이다…” “어떤 어머니도 자기 자식을 자신의 살로 먹이지는 않는다는 것을 기억하여라. 나는 내 공로를 너희에게 전하기 위해 그 사랑의 극한까지 갔다.”
“미사는 내 생명과 내 십자가 위의 희생을 너희 가운데로 연장하는 내 자신이다. 내 생명과 내 피의 공로가 없다면, 너희가 아버지 앞으로 나아갈 때 가져갈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 비참과 죄 밖에는 아무것도 없다…”
“너희는 덕에 있어서 천사들과 대천사들을 넘어서야 한다. 천사들은 너희에게 주어지는 것처럼 나를 양식으로 받는 기쁨을 누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이 샘물에서 겨우 한 방울의 물을 마신다면, 나를 받아모시는 너희는, 온 바다를 다 가지고 마실 수 있는 것이다.”
또 주님께서 고통스러워 하시며 말씀하신 것이 있는데, 이는 습관적으로 주님을 받아모시는 사람들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즉, 매번 주님을 만날 때 그들이 지녀야 할 경외심을 잃어버린 사람들 말입니다. 그런 판에 박힌 자세는 사람들을 미지근하게 만들어서 그들은 예수님을 받아모실 때 무슨 새로운 할 말이 없게 됩니다. 그분께서는 또한 축성된 영혼들 중에도 이렇게 주님과 사랑에 빠지는 열정을 잃어버린 이들이 너무나 많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소명을 직업으로, 업무의 하나로 바꿔버렸고, 누군가 필요로 할 때, 아무런 느낌 없이 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더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나서 주님께서는 우리가 받는 매 영성체 때마다 우리에겐 열매가 맺어져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긴 매일 주님을 받아모시지만, 자신들의 삶을 바꾸지는 않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오랜 시간을 기도하고, 하는 것도 많지만, 삶을 변화시키지는 않고 있습니다. 삶이 변화되지 않는다면 주님을 위한 참된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성체성사로 우리가 나눠받게 되는 그 공로는 우리에게 회개의 열매를 맺어야 하고, 우리 형제 자매들에 대한 사랑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우리 평신도들은 교회에서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파견하셨고, 세례를 받은 모든 이들이 마찬가지로, 나가서 기쁜 소식을 선포하라고 분부하셨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침묵하고 있을 권리가 없습니다. 이 모든 지식을 받아들이고나서 남들과 나누지 않을 권리도 없고, 우리 손에 많은 빵을 쥐고 형제가 굶주림에 죽어가는 것을 내버려둘 권한도 없습니다.
우리는 자기 성당에, 자기 집에 편하게 앉아 우리 성교회가 무너지는 것을 지켜 보고만 있을 수는 없습니다. 주님의 말씀, 사제들의 강론, 순례, 고해성사를 통한 하느님의 자비, 영성체의 양분에서 얻는 놀라운 일치, 설교자들의 외침, 이런 것들을 통해 주님께로부터 받고 또 받으면서 말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우리는 그렇게 많은 것을 받으면서, 안전한 장소를 떠날 용기는 없는 것입니다. 감옥으로, 교정시설로,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로 가서 이야기할 용기는 없는 것입니다. 가서 그들에게 포기하지 말라고 이야기하고, 그들이 가톨릭 신자로 태어났으며, 그들이 겪는 고통은 교회에 꼭 필요하다는 것, 그 고통이 남을 구속하는 데에 소용이 되고, 그 희생이 자신의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해준다는 것을 말입니다.
우리는 또 병원에서 병으로 죽어가는 이에게 갈 줄도 모릅니다. 하느님 자비의 기도를 바치고, 그 선과 악의 사이에서 분투하는 시간에 우리의 기도로 도와서, 악마의 유혹과 올가미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것을 말입니다. 모든 죽어가는 사람들에게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단지 그들의 손을 잡아주고, 그들에게 하느님의 사랑과, 천국에서의 놀라운 일이 예수님과 마리아님 곁에서, 그들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이들 곁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만으로, 우리는 그들에게 위안을 주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시간은 우리에게 무관심하라고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사제의 뻗어진 손이 되어 그가 닿을 수 없는 곳까지 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예수님을 받아모셔야만 하고, 예수님과 함께 살아야 하며, 예수님으로 양분을 얻어 길러져야 합니다.
우리는 두려움 때문에 조금 더 몸을 맡기지를 못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를 찾아라. 그러면 나머지는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실 때, 이는 형제, 자매 모두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즉 하느님의 나라를, 모든 수단과 가능한 모든 방법을 다 써서 찾으라는 의미이며.. 다른 모든 것을 곁들여 받기 위해 팔을 벌리라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그분께서 최고의 것으로 보답하시는 주인이시며, 우리의 가장 작은 필요에도 주의를 기울이시는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
† 형제, 자매 여러분, 이 글이 여러분 손에 닿을 수 있게, 즉, 저에게 맡겨진 이 사명을 완수할 수 있게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에 다시 미사에 참례하시면, 이젠 미사를 삶으로 사십시오. 주님께서 “다시는 미사가 전과 같지 않으리라.”라고 하신 약속을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을 받아모셨을 때, 그분을 사랑하십시오!
우리에게 당신의 교회와 당신의 어머니를 남겨주시기 위해, 또 당신 아버지의 집으로 들어갈 수 있는 문을 열어주시기 위해 찔리셨던 그분 옆구리에 기대어 그 감미로운 느낌을 경험해 보십시오. 이 증언을 통해, 그분의 자비로운 사랑을 느낄 수 있도록 그 감미로운 느낌을 경험해보시고, 여러분의 어린 아이같은 사랑으로 보답해드리도록 애쓰십시오.
하느님께서 여러분 모두를 축복해주시기를 빕니다.
살아계신 예수님 안에서, 당신의 자매, 카타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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