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눔터 > 평신도 단체 협의회 > 바오로대학
|
 |
 |
|
|
|
작성일 : 11-03-17 17:54
 조회 : 6,810
|
119보다 빠른 이웃 (서정홍, ‘부끄럽지 않은 밥상’ 중에서)
산골 마을에서는 이웃보다 소중한 사람이 없습니다.
팽기 할아버지 집 아궁이 옆에 쌓아 놓은 장작더미에 불이 났을 때 얼른 달려가 불을 끈 사람도,
갑자기 가을비 내릴 때 길 위에 여기저기 널어 놓은 나락을 함께 덮은 사람도,
혼자 사는 인동 할머니가 살아 계신지 틈만 나면 들여다보는 사람도,
사슴 농장 아주머니가 화상 입었을 때 아침마다 보건소에 모시고 간 사람도,
설매실 어르신이 경운기 사고로 피흘리며 쓰러졌을 때 병원에 모시고 간 사람도,
새터 할머니가 날이 갈수록 정신이 없어 가스레인지 불을 켜 놓고 산밭으로 나갔을 때 그 불을 끈 사람도
모두 가까운 이웃입니다.
경운기가 논두렁에 처박히면 자기 일처럼 끌어 올려 주는 사람도,
먹는 물이 나오지 않으면 연장을 들고 물탱크로 달려가는 사람도,
밤새 눈이 내리면 아침 일찍 일어나 마을 길에 쌓인 눈을 치우는 사람도,
이웃집 자녀가 혼인하면 며칠 내내 음식 준비를 같이 하는 사람도,
산밭에 일손이 필요할 때 아무 조건 없이 달려와 주는 사람도,
농산물 값이 폭락해 마음 둘 곳 없을 때 그 설움을 달래며 막걸리 한잔 나눌 수 있는 사람도,
발을 헛디뎌 다리가 부러졌을 때 가장 빨리 달려와 주는 사람도
모두 가까운 이웃입니다.
피붙이가 아무리 소중하다 해도 이웃만큼 소중하지는 않습니다.
119구조대가 아무리 빠르다 해도 이웃만큼 빠르지 않습니다.
더구나 산골 마을에서는 이웃이 없으면 살 수가 없습니다
~~~~~~~~~~~~~~~~~~~~~~~
일본 동북부의 끔찍한 재난을 보면서 일본의 성숙한 시민정신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것도 그들이 어렸을 때 부터 배운 메뉴얼 내에서 벗어나
감당할 수 없는 재난이 닥쳐온다면 그들도 어쩔 수 없을 것이다.
극기의 한계에 도달하면 인간은 아무리 교육을 받았다해도 역시 동물인지라 생존의 욕구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1983년 뉴욕의 대폭설 때 10분 간격으로 오던 버스가 한시간 만에 오자 질서정연하게 길게 줄을 섰던 승객이 서로 먼저 버스에 탈려고 한 순간에 대열을 무너트리며 우르르 몰려가던 사건이 생각이 난다.
그때 버스를 못탄 동료는 난방도 끊긴 사무실에서 밤을 세웠다.
아무리 선진국이라 할지라도 위기 앞에서는 무력한 것이 인간이다.
선진국은 시스템이 뒷바침 해 주고 체제를 신뢰하기 때문에 질서가 지켜지는 것이다.
곡간에서 인심난다고 하지않는가?
이번 대지진에 그동안 가깝고도 먼나라인 일본에 대하여 혐오감과 열등감을 느껴온 우리나라 국민이 극일에 한발 가까이 다가가 숫적으로나 금액으로나,
말 그대로 물심양면으로 뜨거운 구호에 참여하는 것을 보니
우리나라도 이제는 경제력 뿐만 아니라 시민의식에서도 선진국 대열에 어깨를 나란이 하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역사는 항상 돌고 도는 역동의 진리이기에, 이번 비극을 계기로 일본의 재앙에 뜨겁고 헌신적인 협력을 함으로써,
우리도 침략자와 피해자라는 콤프렉스에서 벗어나 성숙한 협력적 파트너로 일본과의 관계를 재정립해 나가야 할 때가 오지 않았는가 생각해 본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일본을 형제로 생각하고 세심한 배려를 함으로써 그동안 껄꺼로웠던 관계를 개선해야 할 것이다.
일본은 아이티나 인도네시아 등과는 차원이 다른 나라이기에 곧 이번 재앙에서 벗어 나리라 믿는다.
우리는 진심으로 일본을 위로 해주고 슬픔을 같이 해야할 것이다.
|
|
|